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기술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elestialglobemughal.jpg|height=28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787abc3ffc8d82758ed70c7fef96cfb.jpg|height=28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arbound.Net-Mughal-Multi-Barrel-Cannon-Replica-New-Delhi.webp|height=280]]}}} || || '''{{{#FFF 1630년 경 주조된 금속 [[천구|{{{#fff 천구}}}]] 모형[* 별자리들의 위치가 정확할 뿐만 아니라 표면에 이음매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유명하며, 속은 비어있다.]}}}''' || '''{{{#FFF 대포를 발사하는 무굴의 포병}}}''' || '''{{{#FFF 무굴 제국의 다연발 기관포 모형}}}''' || 무굴 제국 시기 인도에서는 아랍의 뛰어난 이슬람 학문들과 인도의 진보한 수학 체계가 활발하게 뒤섞이면서 학문적, 기술적 발전이 많이 일어날 수 있었다. 특히 자신들을 신의 대리자라고 생각했던 무굴 초기의 황제들은 하늘의 뜻을 살핀다는 이유로 천문학과 점성학에 관심이 많았다. 후마윤은 [[델리]] 근교에 개인용 천문대를 만들어 별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자한기르]]나 [[샤 자한]] 역시 따로 천문대를 지으려 하였으나 예산이 부족해서 못지을 정도로 천문학에 관심이 지대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무굴 천문대들은 대부분 아랍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한 설계에다가 인도의 계산 방식을 적용해서 쓰고 있었다. 워낙 오래전부터 아랍 천문학자들이 천문의 운행을 관찰해왔고, 인도의 정교한 산술법이 합쳐져 시너지 효과를 내다보니 오히려 동시대 유럽보다도 일진보한 면이 있었다고. 참고로 이시기의 저명한 천문학자 알리 카시미리 이븐 루크만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천구 모형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1900년대 중반까지도 이 천구 모형이 만들어진 것처럼 이음매가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속이 빈 구를 금속으로 주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극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고 한다.[* 연구진들이 조사한 결과 왁스로 통을 만들어서 금속을 부어 아예 통짜로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무굴 제국의 천문학자들은 악바르 시대의 역사서인 '악바르나마'에 1577년에 관측한 대혜성에 대해서 기록을 남기도 했고,[* 참고로 이 혜성은 1577년에 지구 근처를 스쳐간 혜성 C/1577 V1으로, [[튀코 브라헤]] 등을 포함한 유럽인들에게도 관측되었다.] 1618년에도 대혜성 C/1618 V1과 혜성 C/1618 W2를 독자적으로 관측하여 기록하는 등 천문학적인 성과도 다수 남겼다. 악바르 시기의 공학자이자 발명가였던 파툴라 시라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의 [[기관포]]를 처음으로 발명한 인물이다. 이전의 그리스와 중국에서 사용되던 자동식 화살 발사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기관포로, 화약으로 찬 통을 회전시켜가면서 다연발 포탄을 쉬지 않고 쏘아댈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신무기의 성능을 단번에 알아본 [[악바르 대제]]는 이 기관포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수레를 만들어 인도 남부 지방을 정복할 때에 유용하게 써먹었고, 이 신무기는 무굴 제국과 맞서 싸웠던 [[마이소르 왕국]]의 기록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전장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마이소르 왕국은 무굴 제국과 싸웠던 시절의 경험을 잊지 않고 이 기술들을 어느 정도 보존하는 데에 성공해서 강철로 만들어진 실린더에 화약 등을 넣은 원시적인 형태의 로켓포를 만들어 영국-마이소르 전쟁에서도 사용했다. 다만 그때는 이미 서양의 발달한 화포들과 무기들이 너무 많이 유입되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화력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보니 이전만큼의 효과는 뽑아내지 못했던 모양. 한편 [[화학]] 분야에서도 나름 선구자들이 등장했다. 화학자 세이크 딘 마호메드는 [[염기(화학)|염기]]와 알칼리 물질들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서 초기 형태의 [[샴푸]]를 만들어 황제에게 진상하기도 했다. 그 명성이 서양까지 퍼져서 영국의 [[조지 4세]]나 [[윌리엄 4세]]에게까지 직접 만든 샴푸를 올릴 정도로 효능이 좋았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